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마뉘엘 마크롱 (문단 편집) == 가정사 == || [[파일:external/g8fip1kplyr33r3krz5b97d1.wpengine.netdna-cdn.com/macron04_100x70-714x579.jpg|width=100%]] || || 마크롱과 브리지트. || 2007년 10월에 마크롱은 자신보다 24세 연상의 선생이자 친구의 어머니인 브리지트 마리클로드 트로뇌(Brigitte Marie-Claude Trogneux, 1953년생)와 결혼하여 화제가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06/2017020600214.html|되었다]]. 아내인 브리지트는 고등학교에서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가르치던 교사였는데, 둘은 1993년 [[아미앵]]의 리세 라프로비당스(Lycée la Providence)에서 제자와 교사의 관계로 처음 만났다. 당시 브리지트는 40세에 1남 2녀를 둔 유부녀이고 장녀인 로랑스는 마크롱과 같은 반 친구이다. 마크롱은 브리지트의 연극반 수업을 받으면서 브리지트와 같이 희곡을 작성하고 동시에 가까워졌다. 마크롱의 부모는 마크롱이 로랑스를 좋아하는 줄 알았으나 브리지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하였다. 브리지트와 상담을 한 부모는 브리지트의 권유를 받아들여 마크롱을 파리로 전학시킨다. 하지만 파리로 떠나기 전 마크롱은 브리지트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며 당신과 결혼하겠다."는 말을 던지고 떠났다. 훗날 마크롱의 말대로 브리지트는 2006년 1월에 남편과 이혼하고 이듬해인 2007년에 마크롱과 [[https://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689910|재혼한다.]] 결혼할 당시 마크롱은 29세이고 브리지트가 53세. 브리지트에게는 마크롱보다 2세 많은 아들 세바스티앵(엔지니어), 마크롱과 학창 시절 같은 반이었던 딸 로랑스(의사), 마크롱보다 7세 적은 딸 티펜(변호사)까지 1남 2녀가 있었고 이들이 자녀 7명을 두어 마크롱은 30대 나이에 의붓손자 7명이 생겼다. 이들은 마크롱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지 2007년 결혼식에 참석했고, 대선 후보 시절 선거 캠페인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편 은행원이었던 브리지트의 전 남편 앙드레루이 오지에르(André-Louis Auzière)는 브리지트와 이혼한 후 은둔하며 지내다 2019년 12월, 69세 나이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https://www.yna.co.kr/view/AKR20201008141100009|#]] 프랑스의 국민정서도 과거와 다르게 엄격하게 변하면서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분리하여 판단하는 기조가 사라지고 대한민국과 미국처럼 가정사에도 도덕적인 기준을 적용하면서 마크롱 부부는 많이 비판받았다. 마크롱 부부를 다룬 뉴스의 [[https://youtu.be/dw-1cdNpaJg|코멘트]]를 보면 15살과 사랑에 빠진 40살 페도필리아라고 브리지트를 비난하거나 마크롱이 나의 아들이었다면 브리지트와 확실히 분리시켰을 것이라며 역겹다는 분위기가 주류이다. [[샤를리 엡도]]에서 대놓고 관계를 조롱하는 만평을 내놓아서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794637.html|논란]]이 되기도 했다.[* 샤를리 엡도는 항상 이런 만평을 내놓아 논란이 되는 신문사이기도 하다. [[무함마드]]를 풍자 및 조롱하는 만평을 내놓은 적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편집장 및 10명이 총기난사로 인해 사망하는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가 발생하기도 했다.] 마크롱은 자신과 아내에 대한 비난을 두고 언급하기도 피곤하다며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794637.html|자신이 24세 연상이라면 아무도 부적절한 관계라고 비난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하였다. 실제로 마크롱이 당선된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와 [[멜라니아 트럼프]]도 24세 차이인데 별다른 비난을 받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다. 하지만 멜라니아는 적어도 자식의 친구를 남편으로 들이지는 않았으며 성인이 되고 트럼프와 교제한 것이므로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멜라니아가 트럼프와 교제를 시작한 시기가 1998년으로 당시 멜라니아는 28세. 그리고 트럼프는 [[이바나 트럼프]]와 1991년에 이혼하고 7년이 지나서 멜라니아와 교제하기 시작한 것이기에 마크롱과 다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 개인의 선택을 과도하게 비방할 이유도 없지만 마크롱의 표현처럼 연하남과 연상녀의 만남이라서 비난받는 건 절대 아니다. 그래도 브리지트와 결혼한 이후로는 특별한 스캔들은 일으키지 않는다. 브리지트가 역사가 깊은 디저트 가게를 운영하는 집안 출신이고 프랑스 언론에서 대놓고 상류층이라고 부를 정도라 마크롱이 후보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세력을 모으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래서 마크롱은 브리지트가 공식적으로 영부인의 업무를 수행하게 만들 계획이었으나 마크롱이 취임하기 직전에 같은 당 소속인 [[프랑수아 피용]]이 아내를 비서로 등용한다고 이름만 올리고 거액의 세금을 갈취한 사실이 발각된다. 그래서 영부인도 세금을 유용할까 두렵다며 세금이 들어가는 일을 벌리지 말라는 국민청원이 등장하고 국민들의 여론에 의해 영부인 업무를 예전보다 공식화하려던 마크롱의 계획은 무산된다. 결국 마크롱은 자신의 임기 중에는 부속실을 두지 않기로 하고 규제를 추가로 마련하였다. 그래서 브리지트에게는 비서 1~2명이 붙는 예우가 전부이다. 브리지트는 자신을 대통령의 아내라고 생각하지 영부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국민들을 안심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